
시리아 하마 (HAMA) 여행에 대한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현재 시리아의 여행 가능성에 대해 가장 중요한 현실을 명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외교부는 시리아 전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경보(여행금지)**를 발령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국민의 방문 및 체류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국 국무부 역시 "Level 4: Do Not Travel" 경고와 함께, 자력으로 시리아를 떠날 수 없다면 "대피하라(shelter in place)"는 권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시리아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분쟁과 폭력 사태의 위험에 노출된 지역임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따라서 현재 시리아 하마를 여행하는 실제적인 가이드가 아닌, 만약 평화가 찾아와 여행이 가능해진다면이라는 전제하에 작성되었습니다. 가지 말라고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무리해서 가지 않도록 당부 드립니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이 하마의 역사적, 문화적 깊이를 이해하고, 그 도시가 간직한 상처와 회복의 서사를 마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한국어로 '하마'라는 지명이 이집트의 '시와 오아시스'나 일본의 '하마마쓰'와 혼동될 수 있으나, 본 보고서는 오직 시리아 중부의 고도(古都) 하마(Hama)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음을 밝힙니다.
시리아 중부에 위치한 하마는 오론테스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약 213km 떨어진 중요한 도시입니다. 도시의 이름 '하마(حماة)'는 아랍어로 '요새'를 뜻하며, 이는 도시가 수천 년에 걸쳐 여러 문명의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줍니다.
고대 하마는 신석기 시대 초기부터 인간의 정착이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11세기에는 아람 왕국의 수도인 '하맛'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이 도시는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제국을 거치며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흡수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은 1930년대 덴마크 고고학자들에 의해 옛 성채가 있던 언덕에서 발굴된 유적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마의 역사는 영광의 연속만은 아니었습니다. 1400년에는 몽골의 티무르에게 성채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고 , 1982년에는 하페즈 알-아사드 정권이 무슬림 형제단의 반정부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구시가지의 4분의 1이 파괴되고 약 2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하마 학살'로 불리며 도시의 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가 하마로 확산되면서 시리아 내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11월, 반군의 공세로 알레포가 함락되고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급속히 붕괴하면서, 시리아는 새로운 과도 정부가 수립되는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마의 역사는 영광과 번영의 순간들뿐만 아니라 반복적인 파괴와 비극의 순간들이 공존하며, 도시의 파괴와 재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의 주기를 보여줍니다. 도시의 회복력은 이러한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 속에서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시리아 하마 (HAMA)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바로 오론테스강을 따라 늘어선 거대한 나무 수차들, 즉 '노리아(norias)'입니다. 현재 17개가 보존되어 있는 이 수차들은 12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오래된 노리아에 대한 기록은 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수차들은 호두나무, 포플러나무 등으로 제작되었으며 , 가장 큰 것은 지름이 21m에 달해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차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 수차들은 오론테스강의 물을 끌어올려 정원과 농경지에 공급하는 필수적인 관개 시설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 라스탄 댐이 건설되면서 강 수위가 낮아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하마의 수차들은 더 이상 물을 퍼 올리는 기계가 아닌,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이자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차는 1982년 학살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노력 속에서 복원되었으며, 이는 기능적 유물이 상실의 역사를 품고 있는 문화적 상징으로 전환된 중요한 사례입니다.
| 수차명 | 지름 | 추정 건립 시기 | 특징 |
| 알무함마디야(Noria al-Muhammadiya) | 21m | 1361년(맘루크 시대) | 두 개의 거대한 수차 중 하나로, 하마 대사원에 물을 공급함. 미국기계기술학회(ASME) 지정 역사 기계공학 랜드마크. |
| 알마무리야(Noria al-Mamuriyya) | 21m | 1453년(오스만 시대) | 알무함마디야와 함께 가장 큰 규모. 나무와 돌로 정교하게 제작됨. |
오론테스강 유역에는 수차 외에도 하마의 깊은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아젬 궁전(Azm Palace)**은 1742년 오스만 제국의 총독 아사드 파샤 알-아젬이 거주하던 화려한 저택입니다. 1982년 분쟁으로 크게 훼손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어 현재는 하마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도시의 옛 성채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4세기 말 로마 시대의 정교한 모자이크 작품(음악가를 묘사)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궁전의 북쪽에 위치한 **성채(Citadel)**는 신석기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까지 유물이 출토된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입니다. 1930년대 덴마크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이 진행되었지만, 1400년 몽골의 티무르에 의해 파괴되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곳에는 시리아의 또 다른 고대 유적인 **아파메아(Apamea)**가 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에 의해 건설되어 로마 시대에 번성했던 이 도시는, 특히 로마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2km 길이의 **대열주(Great Colonnade)**와 2만 석이 넘는 거대한
로마 극장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리아 내전 중 아파메아 유적은 보물 사냥꾼들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약탈당했습니다. 2017년 위성 사진에는 유물을 찾기 위해 파놓은 수백 개의 구덩이들이 유적지를 뒤덮은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분쟁이 인류의 문화유산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비극적인 증거입니다. 하마의 대부분의 유적과 다마스커스 또한 내전 전인 2008년도에 여행 할 당시 너무나도 아름답고 특별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그 일부분만이 남아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 유적지명 | 역사적 시대 | 주요 특징 | 현재 상태 |
| 하마 수차(Norias) | 중세(12~16세기) | 최대 21m 지름의 거대한 나무 수차. 오론테스강 물을 끌어올리던 관개 시설. | 기능 상실 후 복원되어 도시의 상징으로 보존. |
| 아젬 궁전(Azm Palace) | 18세기(오스만 시대) | 총독의 저택으로, 정교한 건축미와 중庭을 갖춤. | 1982년 파괴 후 복원. 현재 하마 박물관으로 활용 중. |
| 하마 성채(Citadel) | 고대~중세 | 신석기 시대부터 유물이 출토된 고고학 유적지. | 1400년 파괴 이후 일부 잔해만 남아 있음. |
| 아파메아(Apamea) | 고대 그리스-로마 | 로마 세계에서 가장 긴 대열주, 2만 석 규모의 로마 극장. | 내전 중 보물 사냥꾼들에 의해 심각하게 약탈당함. |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있습니다. 시리아에서는 수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이 유럽이나 인근 레바논 등으로 망명했으며, 현지에서 지속 가능한 예술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따라서 '예술가와의 만남'이라는 여행의 특별한 경험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도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마의 화가인 **모하메드 히샴 바라잔코(Mohammed Hisham Barazanko)**는 1982년 하마 학살 이전의 도시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파괴된 거리를 되살려내고, 사라진 건물과 사람들의 삶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그의 예술은 단순한 회화를 넘어 상실된 도시를 기억하고, 치유를 위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의 작품은 하마의 역사를 이해하는 창구이자, 예술이 폭력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임을 보여줍니다. 한편, 1982년 '하마 트러블' 이후 도시의 전통적인 원사 실크 직물 산업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예술과 문화가 분쟁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시리아 하마 (HAMA)는 역사적으로 시리아의 중요한 농업 중심지였던 만큼,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한 풍부한 식문화를 자랑합니다. 특히 **키베(kibbeh)**와 돌마(dolmas) 같은 전통 요리가 이 지역에서 유명합니다. 오론테스강 유역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도시의 정취를 만끽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미래의 여행객에게 추천할 만한 곳으로는 오론테스강 강변에 위치한 아름답게 개조된 아랍식 주택 레스토랑인 **아스파시아(Aspasia)**가 있습니다. 이곳은 유럽과 중동 요리를 결합한 퓨전 요리와 훌륭한 전망,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유명합니다. 다만, 현지 후기에는 가격이 높은 편이고 음식의 질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도 언급되므로 , 참고할 만합니다.
시리아 하마 (HAMA)를 떠나기 전, 도시의 기억을 담아갈 기념품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마의 특산물인 올리브 오일과 대추는 신선하고 풍미가 좋아 현지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입니다. 또한, 도시의 상징인 수차를 본떠 만든 수공예 미니어처나, 1982년 이전의 하마를 그린 예술가들의 그림(혹은 인쇄물)은 단순한 물건을 넘어 도시의 기억을 공유하는 상징적인 기념품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불안정한 상황이 해소되어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하마로 향하는 교통편은 주로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시내에서는 택시나 툭툭이를 이용하여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숙소 정보는 가변적이지만, 현지 여행사를 통해 안전하고 편안한 숙소를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평화가 찾아온 시리아 하마 (HAMA)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3일간의 가상 여행 코스를 제안합니다.
| 일차 | 추천 코스 | 체험 및 이동 |
| Day 1 | 하마 시내 역사 탐험 | 오론테스강을 따라 수차들(Norias of Hama)을 산책합니다. 수차의 삐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도시의 오랜 역사에 귀 기울여보세요. 이후 하마 박물관으로 쓰이는 아젬 궁전(Azm Palace)을 방문해 로마 시대 모자이크와 오스만 시대 건축물을 감상합니다. 저녁에는 강변 레스토랑인 아스파시아(Aspasia)에서 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
| Day 2 | 로마 제국의 흔적을 찾아서 | 전용 차량이나 택시를 대절하여 하마 외곽의 아파메아(Apamea) 유적을 방문합니다. 로마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대열주를 걸으며 고대 제국의 위용을 상상하고, 내전의 상처가 남긴 유적지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
| Day 3 | 현지인의 삶 속으로 | 하마의 전통 시장(souq)을 방문하여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느껴봅니다. 수차 미니어처, 올리브 오일, 수공예품 등 도시의 기억을 담은 기념품을 구매하며 재건을 위한 윤리적 소비를 실천합니다. |
시리아 하마 (HAMA)는 거대한 수차가 인상적인 도시지만, 그 뒤에는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며 상실과 회복의 역사를 새겨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도시의 모든 돌멩이, 모든 수차의 삐걱임에는 수천 년의 세월과 현대의 비극이 함께 공존합니다.
비록 지금은 그곳을 직접 여행할 수 없지만, 이 글을 통해 하마의 역사적, 문화적 깊이를 이해하고, 혼돈 속에서도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강인한 의지를 느껴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언젠가 다시 평화가 찾아와, 오론테스강 옆에서 수차가 삐걱이는 희망의 소리를 들으며 현지인의 따뜻한 미소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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